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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정 이영근형!
형을 마지막으로 만나 뵈온지도 벌써 재작년 봄 통일일보 사장실이었나 봅니다. 형은 불치의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지겟발 지팽이를 의지하고 나를 반가이 만나면서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에의 굳은 의지와 정열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명을, 형께서 그 병든 몸에서 터져 나오는 정열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유명을 달리하며 형의 영정 앞에 이렇게 서니 아쉽고 그리운 정 달랠 길이 없습니다.
창정형!
형은 조국이 패망한 일제치하 청주 땅 명문 가정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자질을, 조국광복이라는 대의 앞에 몸부림치며 싸워 왔습니다.
해방된 조국 땅은 다시 강대국들의 정치역학 관계로 남북이 두 동강이로 갈라지는 분단의 비극을 당하게 되니 이 분단의 아픔을 민족의 민주 역량을 결집해서 자주적 민주적 평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형은 온갖 지혜와 정열을 불태워 가며 고난과 역경을 무릅쓰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습니다. 형의 일생은 바로 그 한국 지성의 역사 현장 그것입니다.
창정형!
내가 형을 깊이 사귀게 된 것은 저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6.25 와중, 부산에서였으니 어언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형은 고(故) 죽산 조봉암 선생 농림부 장관 시절, 선생을 가까이 모시면서 농지개혁과 농민곡가안정을 위한 자주소매제도를 확립하는 등 조국근대화 민주 발전의 터전을 다지고 계속해서 농민협동조합, 농민회의 등 조직강화에 열중하면서 분주할 때였습니다.
허울 좋은 이념의 도그마와 해방이라는 미명 아래 동족상잔, 민족말살의, 국제역학의 꼭둑각시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이 분통 터지는 한맺힌 설움 속에서 형은 민족의 지성을 되찾아 인간존엄과 민족자존, 민주, 그리고 평화통일의 대원칙을 고수하면서 이것을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깊은 자각의 선구자였기도 했습니다.
이 깊은 자각은 전쟁을 통하여서 얻은 자각이요, 형이나 나나 아니 온 겨레가 이러한 민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룩해야만 민족의 행복이 오겠다는 것을 다 염원할 때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비원을 정치적 현실에 옮겨 보려고 피나는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미 죽산 선생의 제거의 음모는 진행이 되고 있었으며, 형 또한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말살의 대상이 되고야 말았었습니다.
그리하여 형에게는 어마어마한 대남간첩단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군재 단심에서 처단하려 할 때, 나는 변호인의 자격으로 이 음모를 깊이 알게 되었고, 형의 고매한 인격에도 접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산 선생은 법적 암살을 당하게 되었고 형 또한 이 사건을 전후해서 망명의 수모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영근형!
이제 나는 당신의 영전에서 지난 날의 넋두리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감명 받은 형의 참된 모습을 증언하여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형은 민족의 자존, 독립의식에 투철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형의 민족주의는 이데올로기의 포장을 통해서 보는 편협한 계급적 민족이 아니라 생활과 문화를 같이 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소박한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였습니다. 더구나 남을 무턱대고 오랑캐라 욕하고 남의 문화를 천시하며 망자존대한 민족주의자는 물론 아니였으며, 자기의 열등의식을 돋보이게 하려는 콤플렉스의 발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형은 민족역량을 키우려고 혹은 배움의 터전을 세우고 혹은 태양신문, 민족일보, 통일일보 등 언론을 통한 민족역량 배양에 전력을 기우려 왔습니다.
형은 자유와 정의가 실현되는 역사의 발전 원칙을 신봉하는 진보주의자였습니다. 그러기에 형은 어떠한 미명하의 독재체제나 인간우상의 영웅주의를 반대하고 인간화, 민주화, 평화의 편에 서서 꾸준히 싸워 왔습니다.
우리나라 혁신계 제정당, 돌이켜 보면 멀리 여운형 선생의 근민당, 6.25 후의 진보당, 민주혁신당, 4.19 후의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등 형이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끼치거나 관여하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망명 중에도 서울에 민족일보, 동경에 통일일보를 창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하며 오늘의 자주, 평화, 민주통일의 정도를 이끌어 오는데 선구자적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정형!
형은 바로 20세기 조국의 수난사와 분단사에 자기 몸을 불살은 지성의 현장 증인이라 하겠습니다.
창정형!
이제 홀연히 떠나신 형을 기리며 역사의 소명을 다하신 형의 업적을 더듬다 보니 형의 인간적인 수난의 아픔 마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서 그것도 일제의 쇠사슬을 끊으려 몸부림치던 그 일본 수도 동경 땅에 아이러니컬한 망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수모와 그 고달픔, 그리고 일본 땅에서 생애를 마쳐야 하는 운명의 장난은 아마 형만의 사무치는 한일 것입니다. 처자식과 개인의 행복을 버리고 오직 역사적 사명감에만 몸을 불태우는 고달픔은 형만이 간직한 순정일 것입니다.
창정 이영근형!
형의 육신은 비록 가셨지만 형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고요히 영안으로 보십시요. 형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많은 지기들이 멀리 조국에서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 구름 같이 모였습니다. 형의 업적과 정신은 모든 후진들의 가슴 속에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정을 다 못한 부인과 자녀들도 형의 혼을 간직하고 굳세게 굳세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동경 땅에 남기신 통일일보는 이 땅에 한을 남긴 형과 같이 그들의 권익옹호와 동포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민족의 자존, 그리고 민주적 평화통일의 역사창조를 통하여 세계사의 신기원을 반드시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다 못하신 일 안타깝기 한이 없습니다. 삼가 형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1990년6월16일 / 도쿄, 蒼丁 李榮根 선생 영결식에서
전 진보당 간사장
국회의원
윤길중
http://blog.naver.com/onekorea-news/223031202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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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