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간 <통일> 1973년 1월호, 2・3월 합병호
민주조국통일회의
상임대표위원
李 榮 根
시동(始動)을 위한 서언(序言)
획기적인 정세의 전환
격동이 예측되고 대변혁이 기대되고 있는 1970년대의 4년 째인 1973년을 맞이했다. 지난 3년 간을 돌이켜 보면 예측과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분명 격변의 연속이었다. 우리 조국 통일 문제에 한하여 보더라도 이 3년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25년간 보다 더 큰 변동을 나타내고 있다.
1970년 8월에는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 구상 선언'이 발표되어 8・15 해방 이래 4반 세기에 걸쳐 계속되어 왔던 한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시정 신호가 울렸다. 1971년 8월에는 한국 측으로부터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이 제안되었고 북한 측도 이에 동조하여 동년 9월 예비회담이 개시되었다.
이 모두 그때까지 남·북의 관계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인데 그해 11월에는 진일보하여 남·북의 정권 당국자 간의 비밀 교섭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72년 5월에는 한국의 이후락 중앙 정보부장이 평양에 가서 김일성 수상을 만났고 이어 북한의 박성철 제2 부수상이 김영주 「조선노동당」 조직 지도부장을 대리하여 서울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났다. 그 결과 7월 4일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 성명이 나옴에는 물론 미국의 세계경제국가로부터의 후퇴,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訪中) 등 국제적 측면에 있어서의 그야말로 '획기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7・4남북공동성명에 담긴 내용은 남북관계의 적어도 2단 도약의 접근을 표시하는 것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우리 민족은 물론, 온 세계를 놀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와 같은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이후의 남북 간의 접촉·교섭은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8월 18일에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평양의 김영주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사무실 간의 '핫라인' 이외에 새로 남북 간을 연결하는 20회선의 전화 · 전신선이 개통되었다.
5월 30일에 남북적십자회담 제1회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렸고 이어 9월 13일부터 서울에서 제2회 본회담이 열렸다. 10월 12일에 판문점에서 7・4 남북 공동성명에 의한 남북조절위원회 제1회 공동위원장 회의가 열렸고, 계속하여 제2회 회의가 11월 2일 평양에서, 제3회 회의가 11월 30일 서울에서 열려 조절위원회의 구성 멤버가 결정되고, 1973년 12월 1일 제1회 '남북 적십자 판문점 공동 사업소' 설치에 합의를 봄과 동시에 실질적 토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에 4 반세기에 걸친 남북 간의 장벽에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얼마나 우리 민족이 고대한 것인가. 돌이켜 보면 길고도 험난했던 역정을 밟고 여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민족은 1945년 타의에 의해 국토가 양단되고, 민족이 분열된 그날부터 국토의 재통합과 민족의 재통일을 위하여 싸워왔다.
그리고 국토가 국제 전장화 되고 민족이 강대국 무기의 제물이 되는 비극을 겪으면서 외세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을 되씹고 수천 년 동안 깃들여 온 동족애를 되살려 우리 민족 스스로의 손으로 평화스럽고 행복한 통일 조국을 세울 것을 부르짖어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절대다수의 이와 같은 절규는 국토분단의 계속을 고집하는 벽에 부딪히고 평화적・민주적・자주적 통일에의 투쟁은 효과에 비하여 희생이 컸으며 부침(浮沈)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통일 조국에의 의욕은 쇠퇴되지 않았으며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은 단절되지 않았다. 곤경에 처하면 처할수록 우리 민족의 통일 조국에의 염원은 높아갔으며 조국 통일을 위한 노력은 알차갔다.
그리하여 이제는 남・북의 정권 당국자들도 종래의 정책을 전환하여 남북 간의 대화를 시작하고 통일을 모색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었고 우리 민족이면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의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1973년의 연두에 선 우리는 한 가닥의 불안을 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외 정세의 '획기적' 전환에 따른 실질적인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역행의 현상
7・4남북공동성명은 다음의 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엄숙히 약속한다"라고 하고 있다.
①조국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며, 그러기 위하여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동단결을 도모한다.
② 남북 사이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 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다.
③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한다.
④진행되고 있는 남북적십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 협조한다.
⑤ 돌발적인 군사 사고를 방지하고 남북 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접 신속 정확히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 전화를 놓는다.
⑥이러한 합의 사항을 추진시킴과 동시에 남북 사이의 제반 문제를 개선·해결하여, 또 합의된 조국 통일 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문면에 보는 한 7・4남북공동성명에는 그런대로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당면 조치가 거론되어 있고 그 담당 기관도 정해져 있다. 그리고 통일 실현에 있어서도 ─ 웬일인지 '민주적' 원칙은 빠졌으나 ─ '자주적・평화적' 원칙에 아울러 "사상과 이념・제도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동 단결을 도모"할 것이 강조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이 공동성명이 나온 후 남북적십자회담의 본회담이 열리게 되었고 군사 경계선에서의 분쟁과 스파이 침입 소동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이 공동성명에 천명된 정신을 바탕으로 획기적 전환의 내실화가 추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작년 10월부터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의 태세 정비의 명분 하에 개헌을 포함한 일련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때를 같이 하여 북한 측에서도 조국의 통일에 대비한다는 명목의 새로운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었다. 박 대통령은 작년 12월 23일 조국의 통일 추진을 위하여 헌법 기관으로서 신설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제1회 회의의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국토의 분단은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열강들에 의하여 강요된 굴욕적인 유산이며 동서 냉전 체제가 낳은 기형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국의 남과 북은 극단적인 체제의 예리한 대립으로 쌍방에 가로막힌 두꺼운 장벽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굳어 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혈맥 속에 맥맥이 흘러온 통일의 열망은 이미 강력한 통일의 의지로 응결되고 승화되어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남・북의 굳은 장벽을 뚫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 남북 대화는 민족의 지상 명령이며, 이 민족의 지상 명령에 따라 남북 대화를 적극 전개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주체성을 가지고 조국의 평화 통일을 추진해 나감은 우리의 국시요, 헌정의 지표로서 통일 의지를 집약하고 조직하여 이를 꾸준히 실천해 나가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제도와 체제의 재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에 앞서 작년 11월 21일 국민투표를 통하여 확정된 한국의 신헌법을 보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국시로 되어 있고, 그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국민의 주권적 수임(受任) 기관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구성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지우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전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박 대통령의 개회사와 다름없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 또는 자주적 통일이라는 통일의 방법론적 대전제는 제시되어 있으나 전 국민이 통일 의지를 집약하고 조직하여 달성해야 할 목표, 즉 통일의 내용 ─ 바꾸어 말하여 통일 국가의 지표에 관해서는 그 대강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신헌법 전문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 공화국을 건설한다"라고 밝혔을 뿐이다. 사회주의 사회를 자처하는 북한 측과의 통일을 추진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 측의 신헌법은 어떠한가?
김일성 수상은 작년 12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에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 관한 연설 중 조국의 자주적・평화 통일을 이룩함은 중대한 과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북한의 신헌법은 조국의 참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대체 한국 측과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통일을 바란다면 구태여 신헌법을 사회민주 헌법이라고 부를 것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공화국 북반부에 수립된 사회주의 제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법적으로 옹호함이 신헌법의 목적이요, 신헌법의 제정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제도에 반대하는 내외의 적대분자들과의 투쟁을 강화하고, 제국주의 문화 침투와 복고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획득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새로운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면서 한국 측과 통일을 전제로 7・4남북공동성명에 입각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정치적인 교섭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 교류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연설은 사회주의 헌법의 제정으로 말미암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법적 담보를 가지게 되었으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는 남조선 인민들을 힘 있게 고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조국의 평화 통일이 양두구육(羊頭狗肉)적으로 장식품화 된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으며 우리 민족이 모처럼 맞이한 조국 통일에의 '획기적'전환의 호기를 놓치지나 않나 하는 걱정을 아니할 수 없다.
긴급한 통일 이념 확립
그러면 왜 남・북의 정권 당국자들은 다 같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상 명령으로 내걸고 일련의 원칙에 합의까지 발표하고 있으면서 실질적으로는 '역사적' 호기를 살려 통일 실현에 매진하지 않고 통일에 역행되는 여러 사태를 연출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7・4남북공동성명에 담겨 있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동 단결을 도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위한 기존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신헌법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의 공고화'도 그렇지만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을 이미 고전화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화'에 이르러서는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동 단결을 도모"해서의 조국의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의 공고화를 전형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확립된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과 공민권을 양적・질적으로 더욱 확충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신헌법 전문에는 '더욱 공고히 하는'이라고 되어 있어 이미 많은 결함이 노정된 현행 한국의 체제 질서의 강화를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조국의 평화 통일의 추진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건설을 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가 어떻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결부되는가 해명되어야 할 것인데 아무리 확대 해석해도 결부시킬 수 없는 것이 북한 측의 사회주의 헌법이다
.
도대체 북한이 지난 시기 이룩한 정치적 승리와 성과를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북반부에 수립된 사회주의 제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법적으로 옹호해서 어떻게 한국과의 대화・교섭을 통한 통일 ─ 평화 통일을 실현한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참으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려는 한 최대 급선무로 제기되는 것이 남 북의 기존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하여 조국의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이념을 수립하는 문제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남・북의 어느 일방의 사상과 이념, 제도를 상대방에 강요해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실현될 수 없다. 구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적 부정의를 현출 시키는 한국의 현행 제도를 통일 후의 조국에 답습시켜서야 되겠는가?
우상화된 특정 개인을 정점으로 하는 전제 체제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북한형(北韓型)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제 제도를 남한 지역에까지 확연시킬 수 있겠는가? 그런 것들을 고집한다면 조국의 통일은 백년하청을 기다리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우리 조국의 통일은 물론 7・4남북공동성명에도 밝힌 바와 같이 자주적으로 이루어야 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어디 까지나 남・북 양 지역 주민의 의사가 공정 공평히 표현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밟아 실현되어야 하며 민족 성원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 사회의 운영에 평등이 참여할 수 있고 균등히 기능을 발취할 수 있으며 인류의 선진적 사회에서 확립된 기본권과 공민권이 다 같이 확보되는 민주주의적이고 풍요한 조국의 건설을 목표로 이룩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통일이 되고, 풍요로운 민주주의적 조국을 평화적으로 그리고 자주적으로 실현하고 건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첫째, 인류 사회의 발전 추세가 인류 사회의 현존 두 이념,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정책의 차원으로 침전시키고 있음을 직시하고 앞으로 이 두 이념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한 새로운 이념이 필연코 등장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자유 민주주의라든가 사회주의라고 하는 기존 남・북의 제도·체제의 명목에 사로잡히지 않고 양 제도나 체제에서 참으로 전술한 바와 같은 민주주의를 창달하고 조국을 부영(富榮)케 할 수 있는 장점 만을 취하여 새로운 제도·체제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셋째, 그렇게 하기 위하여 체제·제도를 불문하고 널리 제외국의 좋은 정책을 들여와야 할 것이다.
넷째, 이러한 취사선택과 도입은 체제·제도에 관련 없이 가능하며 그야말로 기존 제도·체제를 초극하여 인류 사회에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는 새로운 제도·체제를 창출케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상이야말로 조국의 통일을 지향하는 이념이라고 하겠는데 이러한 통일 지향 이념이 확립되면 연역적으로 다음과 같은 통일 후의 국가상이 세워진다.
첫째, 통일 후의 우리 조국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정당에 의한, 또한 계급·계층을 빙자한 여하 한 독재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정권 당국에의 비판을 포함한 모든 민주주의적 국민 권리와 야당의 존재가 용인되어야 한다.
둘째, 생산성을 높이면서 분배 면에서 부정의를 발생시키지 않고 모든 국민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경제 제도가 채택되어야 한다.
셋째, 대외적으로 자주독립이 엄수되어야 한다.
넷째, 대내적으로 민주적 자치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적어도 남·북 양 지역사회의 등질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일당전정(一黨專政)은 허용되지 않으며 유력한 정당・정파・정치인의 협력에 의한 연립 정부가 조직되어 정치 운영을 담당해야 한다.
상술한 바와 같은 통일 지향 이념의 확립과 통일 후 국가상의 책정이 없이 조국 통일 작업을 추진할 수 있는가? 물론 실질적인 추진은 기할 수 없으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이것 만으로 조국의 통일로의 길이 스스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필요한 통일 작풍 정립
참으로 민주 조국으로의 통일을 추진하려면 또 하나 그에 적합한 작풍(作風) 이 민족 내부에 정립되어야 한다.
통일 추진 작풍의 첫째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올바른 통일 이념과 훌륭한 통일 국가상이 제시되고 그럴듯한 통일 방안이 제기되더라도 그것이 한갓 과시적 선전용에 불과하다면 실제의 통일 추진에는 도움이 안 된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표면에 내건 정책이나 말과는 너무나 어긋나는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해를 입었다. 그러한 누습은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고 남북 간 관계의 정상화가 거론되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공적으로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달라서 당연한 듯이 여겨지고 있다. 실례의 하나로서 평화 통일을 내걸고 있으면서도 폭력에 의한 한국 현 정권의 타도를 표방하는 「통일혁명당」을 계속 지원한다고 호언하는 북한의 태도를 들 수 있다.
7・4남북공동성명을 지지한다고 공언하면서 민단(재일 한국민단)의 정식 기관에 거역하고 있는 자들과 조직적으로 제휴하고 있으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근거도 없이 반동·스파이 등의 딱지를 붙여 비방 중상하는 일본에 있어서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지도층의 행태도 이러한 예라 할 것이다.
둘째는 독선을 배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현행 제도만을 우월시 하여 그대로 통일 후의 조국에까지 존속시키려는 것도 그렇지만 북한의 체제 만을 절대시 하여 그 영속화를 고집하는 것은 조국의 통일에 해는 되어도 이롭지는 못하다.
하물며 김일성 수상을 우상화하여 김일성 사상 이외는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말라"는 것 따위는 조국 통일에 백해무익이다.
셋째는 겸허다. 스스로 존대해서 상대방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는 남·북의 대화는 고사하고 비록 동족이나 사상·이념 ·신앙・·소속을 달리하는 사이의 접촉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겉치레의 겸허로 실리 만을 탐해 가지고는 대화가 계속된다고 해도 흥정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겸허하게 진실을 토로하는 동족 간의 대화가 추진되어야만 조국의 통일로의 길이 열릴 것이다.
넷째는 호양(互讓)의 정신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만 양보시키고 상대방에 대한 양보는 절대로 안 한다면 조국의 재통일, 민족의 재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자기의 말을 세우기 전에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기 전에 상대방의 주장을 고려하는 호양의 정신의 발휘가 없이는 국토 분단선의 철폐만이 아니라 정권의 일원화, 남북 사회의 등질화까지 이뤄야 하는 조국의 통일은 추진될 수 없을 것이다.
다섯째는 그렇다고 자학적 비하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 민족의 폐습의 하나로 사대주의가 지적된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 있어서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사대주의란 원래는 강대국에 인접한 약소 민족의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슬기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잘못 인식되고 잘못 습성화되어 우리 민족 내의 일부에 외세 추종과 강자에게 아부를 일삼는 나쁜 버릇을 남겼다. 6・25 동란의 비극도 이런 데서 나온 것이나 오늘에 있어서 남·북의 위정 당국자들이 외국 사회에서 형성된 판박이 이념의 범주를 초극하지 못하고, 한편 국민 대중이 집권 당국자들이 내거는 구호와 눈치만 보고 있어 새로운 통일 이념 하의 범민족적 통일 운동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마음과 자세를 바로잡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조국의 자주적 통일이란 한낱 구두선(ㅁ頭禪)에 불과할 것이다.
여섯째는 우리 민족 전체를 단위로 한 이익을 기타의 모든 이익에 우선시키는 것이다. 특정 계급의 이익이나 특정 정권의 이익은 물론 제도·체제를 같이하는 국제적 운영의 이익 등에 구애되어서는 조국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은 실현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특정 개인의 이해에만 급급해서는 조국의 민주적 통일은 일보도 전진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상은 어떤가? 민족 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 추구되고 있고 계급 혹은 진영의 이익을 핑계로 특정 정권의 이익만이 추구되고 있다.
따라서 또 하나의 작풍으로 탐욕을 버림이 요청된다. 특정 개인이나 특정 정권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도 탐욕 때문이요 거짓말과 기만을 일삼는 것도 탐욕 때문이다.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개인이든 정권이든 겸허해질 수도 없고 호양의 미덕을 발휘할 수도 없다. 가까운 예로서 남북적십자회담의 경과만 보더라도 남 북의 이산가족의 애처로움은 아랑곳없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낭비되었는가?
그와 같은 마음의 자세로 참된 통일 과업이 착수되어 성과를 올릴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이 모처럼 맞이한 조국 통일에의 호기마저 놓치게 할지 모를 것이다.
통일의 출발점에 서서
거듭 말하여 지금 우리 민족은 내외정세의 '획기적'인 전환기에 처해 있고 조국 통일 추진의 절호 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민족은 조국 통일 대로의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 민족을 에워싼 내외 정세나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여건과 객관적 여건을 보면 통일이 스스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러한 것은 못 된다.
우리들의 방향 책정과 노력 여하에 따라 조국 통일의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고 지연될 수도 있는 상황 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에게 현재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조국 통일 작업의 지표를 명확히 책정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한 새로운 통일 이념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통일 과업을 추진하는 담당자로서 견지해야 할 올바른 작풍, 즉 통일 작풍을 확립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 사업에는 아직 인류 사회에서 본 바가 없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통합해야 하는 어려움이 가로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피하려 해서도 안되고, 우물쭈물 넘기려 해서도 안 된다.
하물며 동・서독일이 이 문제를 차치하고 '일민족이국가 체제'를 고정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여 그를 본보기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우리는 아무리 곤란하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부딪쳐 기존 양 이념, 제도를 초극한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제도·체제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강대국에 의하여 분단되고 분열된 국토와 민족을 지금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재통합・재결합하려 나서고 있다.
우리는 천수백 년 동안의 단일 민족의 슬기와 긍지를 살려서 조국의 재통일을 실현하여 안으로 우리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누리며, 밖으로 세계가 하나의 인류 국가로 되기까지는 일민족 일국가(一民族 一國家)가 가장 타당한 국가 형태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인류 사회에서 아무도 아직 실현하지 못한 이질적 이념과 제도의 통합을 전진적인 방향에서 이루어 행복한 사회 건설에 있어서 새로운 지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한 조국, 즉 새로운 민주 조국으로 통일이 가능할까? 절대 가능하다는 신심을 다짐하는 것이 통일 과업의 시동임을 명심하자.
통일 실현의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
남북 간의 7・4공동성명이 나온 후로 조국 통일에 있어서 '원칙'이란 말이 많이 쓰이게 되었다.
특히 북한 측에서는 이 성명의 '조국 통일 원칙'의 항목에 열거된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3조목을 북한의 김일성 수상이 연래 제창하여온 통일의 3대 원칙이었는데 이것을 한국이 응낙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조국 통일의 '원칙'이란 조국의 통일을 실현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규범이요, 또한 조국의 통일이 실현됨에 있어서 지워지는 제약으로 풀이되겠는데 그렇다면 첫째의 자주적 해결과 둘째의 평화적 실현은 원칙이 될 수 있어도 셋째의 사상・이념・제도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이란 조국 통일의 원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조국 통일의 원칙이라고 하면 자주적, 평화적 원칙에 민주적 원칙을 보태 3대 원칙이라고 해왔다. 이것은 북한 측에서도 같았다. 그것이 7・4공동성명이 나오면서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민주적 원칙은 사라지고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이란 것이 3대 원칙의 하나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남북 간의 평화적 공존의 원칙은 될 수 있고 조국의 통일 과업에 임한 민족의 자세는 될지언정 거듭 말하여 통일 실현의 원칙은 될 수 없다.
통일 실현의 3대 원칙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조국통일 원칙'이란 조국의 통일실현에 있어서의 규범이요, 제약, 바꾸어 말하면 우리 민족이 조국을 통일함에 있어서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통일이 안 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8・15 해방 직후 미・소 양 국군의 38도선 분단 점령으로 국토가 양단되어 우리 조국의 분단선 철폐와 독립 정부 수립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시의 연합국의 전후 처리 문제로 취급되고 있었을 때에는, 아니 그 후 미・소 양 대국 간의 이해와 의견의 상치로 우리 조국의 문제가 유엔으로 회부되어 결과적으로 남·북 양 지역에 각기 별개의 정권이 수립되어서도 우리 민족 내부에서나 국제적으로나 우리 조국의 통일 문제가 제기되고 다루어졌으나, 통일 실현에 있어서의 '원칙'문제가 특별히 거론되지는 않았다.
1945년 12월의 '모스크바 3상회의의 '조선 문제에 관한 협정'을 보나 유엔에 있어서 조선 문제에 관한 최초의 결정인 1945 년 11월의 제2회 유엔총회의 결정을 보나 국토 분단선이 철폐되고 통일 독립 정부가 된다면 그 방법은 평화적이고 따라서 민주적일 것이라는 것은 자명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평화적 방법이나 민주적 절차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자주적 통일 독립에 관해서는 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1947년 가을에 이르기까지 이 협정에 의한 미소공동위원회가 5개년을 기한으로 하는 미・소・영・중 4개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전제로 하여 협의를 진행하고 있던 기간 중 민족주의 진영에서 신탁 통치를 반대하고 민족 자결 원칙에 입각한 즉시 독립을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고 조선 문제가 미국에 의하여 유엔에 상정됨에 따라 이번에는 공산주의 진영에서 민족 자결 원칙을 내세워 반대하고 유엔총회 결의를 보이콧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측에서는 민족 자결 원칙을 내세워 신탁통치를 반대한 직후 우리 민족의 대표가 발언조차 할 기회도 못 가졌던 유엔총회의 결의에 의한 유엔 기관 주도 하 통일・독립 정부 수립에는 찬성했고, 한편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 맹종하던 공산주의자들은 신탁통치는 찬성한 주제에 민족자결을 들먹이며 유엔 결의를 반대함에 이 양자가 말하는 민족자결이란 한낱 정략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다만 이 시기에 시종일관 자주적 통일·독립을 부르짖으며 굽히지 않은 사람들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뿐이었는데, 그러나 이 민족대의 와 국제 정의에 입각한 지당한 주장은 거족적인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고고한 우국의 소리도 일부 겨레의 가슴을 매질했을 뿐이었다.
민족의 해방을 스스로 쟁취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힘으로 8・15 해방을 맞은 겨레의 대부분은 ─ 아니 국제적으로도 ─ 우리 조국의 통일은 강대국에 의하여서 밖에 될 수 없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우리 민족에게 우리 조국의 통일을 실현하는 데 꼭 지켜져야 할 것이 있고 또한 우리 민족이 조국의 통일을 실현하려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 인식되고 이 조국 통일에 있어서 '지켜져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을 통일의 원칙으로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은 6・25 동란을 계기로 해서이다. 6・25 동란은 무력에 의한 통일의 시도에서 시작된 것이고 무력에 의한 통일의 불가능함이 실증됨으로써 끝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 동란의 휴전이 성립된 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북진 통일론과 같이 무력에 의한 통일이 계속 주장된 바 있고 김일성 정권의 '선(先) 남조선 폭력혁명 후(後) 남북 통일론'과 같이 무력 통일의 하나의 변형에 불과한 것이 추진된 바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우리 민족의 동족상잔 재현에 대한 거부반응과 강대국 간의 전쟁이 불가능하게 됨으로 말미암은 동·서 양 진영 간의 평화 공존으로의 조류는 우리 조국의 남·북의 양정권 당국자들까지도 평화적 통일을 인정 내지 표방하지 않을 수 없게 하여 이에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이 조국 통일의 원칙으로서 불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6・25 동란의 뒤처리와 남북 간의 통일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열렸던 1959년의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남·북의 정권 당국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이 남・북 양 지역의 동시적 총선거에 의한 통일 실현에 합의가 이루어짐에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한 통일, 즉 민주적 통일이 또한 통일의 원칙으로 당연시되었다.
여기에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이 정략적이 발언을 넘어서 조국 통일에 하나의 원칙으로 거론되기는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우리 조국의 통일 문제가 미·・소 등 강대국의 손으로 또는 관련국 회의나 유엔 등에 의하여서도 해결될 가능이 없어진 데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며 동시에 민족 자결 원칙에 의거하여 신흥 독립국이 대거 국제무대에 등장하는 세계의 조류에 자극되어 우리 민족도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조국의 통일과 자주독립을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리하여 1960년대 중반부터는 조국의 통일을 언급하는 한 평화·・민주·・자주는 통일의 3대 원칙으로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7・4공동성명에는 이 통일의 3대 원칙 중 민주원칙이 빠졌다. 이것은 타당한 것일까?
민주 원칙의 중요성
우리는 유감스러우나 7・4공동성명이 나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 통일의 원칙에 왜 민주 원칙이 빠졌는지 이 성명을 낸 당사자들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한 측이 왜 민주 원칙을 빼고 대신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원칙으로 넣어 통일의 3대 원칙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지 이 '바꿔치기'에 대한 해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 평화적 통일이라면 당연히 남·북 양 지역을 통한 총선거에 의한 통일을 내용으로 하게 되는 만큼 새삼스럽게 민족적 원칙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설이 나올지 모르겠다. 이런 설이 종래의 통일의 원칙이니 하는 말을 발설한 적이 없는 한국 측 당사자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 타당성 여부는 별문제로 하고 용혹무괴(容惑無怪)라고 하겠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 나온다면 그럼 자주와 평화에 민주를 넣어서 3대 원칙이라고 했던 것은 잘못이었기 때문에 시정한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 이러한 질문에 대한 북한 당국자 측의 답변을 기대할 수 없거니와 답변을 들을 필요도 없다.
왜냐 하면 결론을 먼저 말하여
첫째로는 아직도 민주 원칙은 자주원칙・평화원칙과· 더불어 우리 조국의 통일 실현에 있어서 3대 원칙으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이란 통일의 원칙으로서 자주적 해결, 평화적 방법으로의 실현과 같이 열거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격히 따진다면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이란 될 수도 없으며 또한 그것 만으로 우리 조국의 통일이 실현될 수도 없다.
우리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기 위하여 남・북 양 지역에 기존하는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을 해야 한다면 말일뿐 아니라 꼭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해 놓고 새로운 사상, 이념, 제도를 내걸지 않는다면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대단결을 한단 말인가? 대단결의 목적도 수단도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특정의 제도를 가진 통일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인 만큼 어느 특정의 사상, 이념에 기반을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주적 해결이나 평화적 실현도 특정 사상,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7・4공동성명의 통일 원칙 항목은 그 문맥은 여하튼 우리 조국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의 실현을 위하여 기존 사상, 이념, 제도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자는 것으로 풀이함이 타당하겠는데 그렇다고 이로써만 통일이 실현될 수는 없다.
민족적 대단결을 하여 자주적으로, 즉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 민족의 손과 힘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즉 무력에 의거하지 않고 통일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통일 정부를 수립하여 남·북의 양정부를 일원화하고 어떠한 정책에 준거하여 남・북 양지역 사회를 등질 화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이론상으로는 남・북 어느 한쪽의 정권이 타방의 정권을 흡수하고 자기 쪽의 제도·정책을 타방에 그대로 확연 · 추종시키는 방범이 있을 것이고 이 경우에도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무력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주적, 평화적 통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북한 측에서는 한국 지역에 있어서 북한 지지 하의 폭력적 방법에 의하여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그 인민민주주의 정권과 북한 측의 김일성 정권과 통일을 한다는 것을 조국통일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내놓고 ─ 두드러진 것은 1970년 11월에 공표된 노동당 제5차 대회의 결정에서 볼 수 있다 ─ 그것을 평화적 통일이라고 우겨댄 일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두구육적인 평화 통일은 특정 정권 중심의 국토 통일은 될지 몰라도 민족의 통일, 즉 진정한 조국의 통일은 될 수 없는 만큼 용납될 수는 없다. 또 하나 형식 이론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남・북 양 정권 당국자들만의 합의에 의하여 권력 배분 등의 방법을 취한 정권의 결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남·북 양 정권의 성격과 생태로 보아 가능성이 희박하고 우리 조국의 통일에는 통일 정부의 성격과 기본 정책 문제가 제기되므로 무원칙한 야합적(野合的) 정권 통합에 의한 통일은 허용될 수 없다.
따라서 평화적 통일을 실현할 경우 가장 타당한 구체적인 방법은 남·・북 양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민족 전원이 자유로이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여건 하에 통일 후 국가의 제도와 기본 정책을 채택·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 ─ 바꾸어 말하면 남・북 양 지역을 통한 동시적 · 민주적 총선거를 통한 통일실현뿐이다.
이것은 이미 상식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8・15 해방· 이후 통일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모두가 당연지사로 여겨온 것이다.
북한 측에서 연방 제론이 오래전부터 나와 있고 최근 한국 측의 일부 논객 중에서 복합 국가론 등이 나오고 있으나 이런 것은 발설 당사자들도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통일에 이르는 기간 중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과도적 조처는 될지언정 통일을 실현하는 직접적인 조처는 아니다.
거듭 말하여 우리 조국의 통일은 자주적·평화적으로 해야 함과 동시에 민주주의적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하며 그렇기 매문에 민주적 원칙은 자주, 평화와 함께 우리 조국 통일실현의 3대 원칙의 하나로 정립되어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평화 통일이라고 하면, 즉 민주주의적 선거를 시행해서 해야 하므로 구태여 민주적 원칙이란 것을 통일 실현의 원칙에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평화 통일에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있음을 간과한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공동성명에는 민주적 원칙이 누락되었으니 웬일일까? 호의로 해석한다면 면밀한 분석을 통한 개념 규정을 하지 않고 평화 통일 = 민주 통일로 간주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민주 원칙을 통일 원칙에 넣어 서둘러서 확립해야 할 것이다.
민주 원칙의 내용은?
그런데 이 민주 원칙을 확립시켜 통일 실현 시기에 실지로 적용함에는 남·북의 정권 당국자들 간의 합의와 조작으로서만 족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남·북 양 지역 동포들의 대중적 참여가 필수적 요건으로 제기된다.
그것은 물론 민주주의의 원리에 비추어 그렇게 해야 한다. 대중의 참여 없이 강대국으로부터, 혹은 집권 상층부로부터 주어지는 민주주의란 8・15 해방 이후의 우리 민족의 체험을 통해서만 보더라도 형식적인 것, 허명 무실한 것이 되고 만다. 우리 민족은 대다수가 강대국이 사도인양 표방하고 우리 민족에게 전수했다는 민주주의가 실속 없는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또한 우리 민족 내부의 집권자들이 내건 민주주의가 다분히 정략적인 것이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전자는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손으로 식민지 통치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지 못함으로써, 후자는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제도와 정책을 수립할 수 없었으므로 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통일 후의 조국에서까지 명목적인 민주주의를 감수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은 통일 후의 조국에 있어서까지 강대국이나 집권 층들이 만들어 내던져주는 제도나 정책을 앉아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 조국의 통일은 전술한 바와 같이 남·북의 어느 한쪽의 정권이 타방 쪽의 정권을 흡수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평화적 공존에 끝나고 통일을 하지 않는다면 모르나 명실 공히 평화통일을 이룩하려면 통일 정부가 수립되어 남·북의 양 정권을 흡수·일원화해야 할 것이오, 현재 이질적인 남·북 양지역 사회를 등질의 사회로 등질 화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양 지역을 통한 총선거를 통하여 표출될 남・북 양 지역 거주 동포들의 의사에 의하여 통일 정부의 기본 성격과 남・북 양 지역사회 등질화의 기본 정책이 규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통일 총선거는 지금까지 남・북 양 지역에서 시행되어온 선거와 그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첫째, 선거인의 의사표시 대상의 범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록 자유민주주의 체제하라고 하나 오늘날까지 한국지역에서 행하여 온 선거에 있어서 선거인의 의사에 표현의 대상은 협의의 자유민주주의 정체 하의 특정의 국시 ─ 예를 들면 반공과 같은 ─의 범위 내에서만 선택이 가능했고 또한 그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한편 김일성적 사회주의 체제 하의 북한 지역에서는 선거란 선거인의 의사와는 거의 무관한 정권 당국이 내놓은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 찬성만이 요구되는 그야말로 형식적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 조국의 진정한 평화 통일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된다고 하면 선거인의 의사 표현의 대상 범위가 이렇게 국한될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통일 총선거에는 좌로는 김일성적 사회주의자와 이와 정견을 달리하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도 입후보할 수 있을 것이오, 우로는 자유 민주주의자는 물론 극우 보수주의자도 출마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통일 자체를 반대하여 선거는 통일 총선거지만 선거에서 다수를 제압하면 국토 분단을 그대로 두겠다는 자들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통일 총선거에 통일 반대론자가 입후보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 대다수의 심정으로 미루어 있을 수 없을 터이지만 여하간 통일 총선거에는 좌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우의 자유 민주주의자까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특정 권력자가 싫다고 해서, 또는 특정 권력 층에 불리하다고 해서 입후보자에 제약을 가하거나 선거인들에게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선택을 막아서야 되겠는가.
일찍이 남・북 양 정권 대표가 최초로 한자리에 마주 앉은 1954년의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인구 비례에 의한 자유・비밀 ・보통 선거에 양 당사자 간 합의를 본 바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정권 당국자는 자신이 해당되는 지역에서 모범적 민주주의 선거가 시행되고 있는 것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규제가 심하거나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공표 문면 상으로는 자유・비밀・보통선거를 실시하기로 공약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현재까지 선거 실태가 타성화(楕性化) 되어 통일 총선거도 권력자가 조종하는 대로 권력자의 의사에 맹종하는 것이 될 우려가 불무(不無)하다. 통일 총선거가 그렇게 되어도 민주적 원칙 하에 실시된 선거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인정할 수 없을 것이며 통일실현에 있어서 민주적 원칙을 고수하는 한 통일 총선거를 그러한 선거가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총선거를 진정한 민주주의적 선거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자 그대로의 자유·비밀 ·보통 선거, 즉 이미 현재에는 전형화된 민주주의적 선거가 시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시에 이러한 선거의 원칙이 협의로 해석되거나 왜곡되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 측에서는 현재 북한 지역에서 하고 있는 선거방식, 즉 단일 입후보에 대한 찬·반만을 표시하는 방법을 사전에 민주적 단체들을 중심으로 대중적 토론을 거쳐 단일 후보가 결정되는 만큼 가장 민주적 선거 인양 말하고 있다.
한편 한국 지역에서는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 바와 같이 많은 제약이 가해진 선거가 한국적 특수성에 연유된 민주적 선거인 듯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또한 제약성 있는 선거가 조국 통일의 마당에서 행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통일 총선거에 있어서는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최대한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우리 민족 성원의 전체 의사가 가장 공정하게 표시될 수 있는 방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당면한 몇 가지 과제
그럼에는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로 통일 총선거에 이르기 전 상당 기간에 걸쳐 통일 문제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또한 조국의 장래의 진로에 대하여 자기 나름으로의 확신을 기르지 못한다면 통일 총선거의 마당에서 갑자기 민주주의적인 선거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참된 의사가 정확히 표시되기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통일 총선거를 통하여 진정한 민족 대다수의 의사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통일 문제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조국의 장래에 대한 확신 있는 전망을 못 갖는다면 통일 실현의 과정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까?
일시적 감정에 좌우되거나 눈앞의 선동·선전에 현혹되어 그릇된 의사를 표시하기 쉬울 것이고 따라서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 문제를 다룸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함이 요청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위정 당국자들만이 통일 문제의 취급을 전담하고 국민 대중에는 알릴 필요도 없고 쫓아오게만 하면 된다는 식의 처사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
김일성 사상, 정책, 방침 이외는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말라는 식으로 통일 문제를 끌고 간다면 우리 조국의 민주적 통일, 나아가서는 평화적 통일도 실현될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진정 평화 통일 ─ 그 구체적인 방도인 민주적 통일을 실현하려면 우리 민족 구성원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통일 문제에 대한 광범한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
그리하여 통일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 하에 통일 추진 사업에 각자가 다 참가함으로써 실천을 통하여 통일 정부의 성격과 기본 정책 등에 대한 확신을 얻어 가지고 통일 총선거에 임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실정은 어떠한가? 남・북 양지역에서 다 국민들에게 통일 문제에 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통일 추진 사업에 국민들의 참여는 전시용 선전에 이용되는 것이 고작이고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통일 문제에 관한 광범한 정보 제공과 국민의 통일 과업에 대한 실질적 참여의 길이 열려야겠는데 후자에 관련하여 이 시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새삼스럽게 6・25 동란을 들먹일 것도 없지만 우리 민족은 조국의 남・북 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로 말미암아 많은 희생을 입었다. 현재도 많은 동포들이 오로지 비정상적인 남・북 간 관계 때문에 국민 혹은 공민으로서의 정상적인 권리를 향유 못 하고 있고 적지 않은 수의 동포가 영어의 신세가 되어 있다.
북한 지역에서 수백만을 헤아리는 월남자의 가족들이 이여(爾余)의 공민들과 같은 행세를 못하고 있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 되어 있다. 그리고 10만 단위로 세어야 할 구남로당(舊南勞黨) 관계자 및 그 가족 · 친지들이 또한 남보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것도 추측되고 남음이 있다.
남한에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8・15 해방 이후 이른바 좌익계로 지목된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독당을 위시한 보수계에서도 남북협상이나 평화적 통일을 주장한 인사 및 그 가족들은 사회적 소외의 대상이 되어왔다.
과거 이승만 정권 때에 변영태 국무총리는 한국에는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300만 이상의 혁신계가 있어 위험성 있는 세력인 것처럼 말한 바 있는데, 소위 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 하는 오늘에 있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 권리의 실권(失權) 내지는 반실권 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남북 간의 비정상적 관계로 인하여 정상적 사회인으로서의 활동의 제약을 받고 있는 이 많은 동포들을 남・북의 집권 당국자 간에 통일을 지향한 대화가 시작되고 있는 이 마당에 방치해 놓을 것인가? 7・4공동성명이 한낱 정략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조국 통일이니 통일의 원칙이니 나열해 놓은 것은 국내외 정세와 조건의 추이에 따라 부득이하게 내린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면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 집권 당국자인 만큼 정략적 의도가 내포 안 될 수는 없으나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발로 되어 다소라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여 7・4공동성명을 낸 것이라면 남・북의 집권 당국자들은 각기 지역 내에 있는 상기 실권 내지 반실권의 국민 또는 공민에게 조국통일 과업에 참여할 기회가 부여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조국의 통일이란 국토의 통일만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도 실현됨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서 전민족이 참가하여 대다수의 의사를 모으는 민주적 통일이 원칙으로서 제기되는 것이고 통일을 반대하는 자나 통일 추진과정에서까지 남・북의 어느 한쪽의 파경을 책동하는 자들을 제외한 전 민족 성원의 통일 과업에 참여가 요청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정치 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발전이란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 인권과 시민적 권리의 확충을 말함이요, 그러한 기본 인권과 시민권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 즉 사람의 범위 확장을 의미한다. 우리 조국의 통일이 조국의 민주적 발전을 기함이 목적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일진대 통일 과업에 참여자의 범위를 축소해서야 되겠는가?
거듭 말하여 통일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외세가 만들어 내던져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요, 같은 사회 구성원 중의 권력층이 밀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 스스로의 노력으로 가능한 한 가장 확충된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조국의 통일을 실현하여야 하며 민주적 발전을 주목적의 하나로 하는 통일 조국의 건설에 힘써야 한다. 조국 통일의 원칙이란 통일 실현 단계뿐만이 아니고 통일 후 조국의 진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 註 / 민주조국통일론>
이 논문은 월간지 <통일>의 1973년 1월호와 2•3월 합병호에 2회에 걸쳐 실린 연재 논문의 전문이다.
제1회의 부제목은 <그 시동(始動)을 위하여> 제2회의 부제목은 <통일실현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그에 입각하여 구성된 남북조절위원회의 회의가 몇 번 열리는 등 획기적인 정세의 전환이 이루어져 통일문제의 진전에 밝은 전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 그 해 10월에 한국에서는 유신헌법이 채택되고, 12월에 북한에서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는 등 정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현상이 나타나 우려되는 새로운 국면이 벌어졌다.
이에 창정(蒼丁)은 이 논문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유신헌법과 사회주의 헌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양헌법의 문제점을 지적, 특히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이것으로는 7•4공동성명에서 합의 본 바대로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할 수 없으며, 그를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통일되고 풍요한 민주주의적 조국을 평화적으로 자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입장에서 새로운 이념을 제시한다.
더불어 통일추진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작풍(作風)이 민족내부에 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① 거짓말을 아니하고 속이지 않을 것 ② 독선(獨善)의 배제 ③ 겸허 ④ 호양(互讓)의 정신 견지 ⑤ 자학적 비하에 빠지지 말 것 ⑥ 우리 민족 전체를 단위로 한 이익을 기타의 모든 이익보다 우선시킬 것 등 여섯 가지를 통일추진의 작풍으로 정한다. 이는 창정(蒼丁) 자신이 실천활동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을 종합•정리한 것이다. 사실 작풍 문제는 실천활동을 통해서 고뇌한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문제다.
<민주조국통일론>의 연재 제2회는 <통일실현의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부제목에 잘 나타나 있듯이 평화, 자주, 민주의 통일3대원칙 중에서 민주주의 원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통일 문제를 논하고 있다.
여기서는 통일원칙은 통일실현에 있어서의 규범(規範)이며 제약(制約)으로서, 우리 민족이 통일함에 있어서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통일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이름이라고 엄격히 규정한다.
그러고 나서 북한측이 7•4공동성명에서 민주원칙을 빼고 민족대단결로 바꿔치기 한 점을 엄격히 따진다. 우선 먼저 ‘민족적 대단결’은 남북간의 평화공존과 통일과업에 임하는 민족적 자세는 될지언정 통일실현의 원칙은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때까지 자주, 평화, 민주를 통일3대원칙이라고 해왔던 북한측이 7•4공동성명에서는 왜 민주원칙을 빼고 민족대단결로 바꾸었는지 아무 설명도 해명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한다.
북한측 주장에 의해서 7•4공동성명에서 민주원칙이 빠진 문제의 중대성을 지적한 것은 7•4공동성명 발표 직후의 <통일조선신문> 사설과 이 논문이 국내외를 통해 처음이다. 그 후 1980년에 북한측이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내놓은 ‘고려민주연방제안’에서 민주통일의 상징인 남북총선거를 배제하여 남북총선거 없는 통일로서 고려민주연방제를 과도적인 조치가 아닌 통일실현의 최종 목표로 주장하기에 이른 것도 7•4공동성명에서 민주원칙을 뺀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 논문에서의 창정(蒼丁)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고 지당하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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