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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정 이영근 동지의 영전에 드립니다.
창정 동지!
나는 이 순간 동지의 영전에 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병드신 육신이 언젠가는 우리들 곁을 떠나가시겠지만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가실 줄은 믿지 않았습니다.
동지의 영전에 서니 지나간 일들이 낱낱이 주마등과 같이 되살아나서 이 아쉽고 적막한 심정을 슬프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그 슬프다는 낱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창정 동지!
최근 몇해 동안 동지는 내가 동경에만 오면 병고를 무릅쓰고 하꼬네산장에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민족의 갈 길을 이야기했습니다. 작년 12월에 왔을 때에도 동지는 체중이 79킬로로 늘었다고 하면서 박병배 형이 창정 동지는 92세가 정년이라고 했던 말을 웃어 넘기면서도 약간의 관심 같은 것을 가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덕에 밤 두시가 넘도록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았습니까?
동지와 최후로 만난 금년 정월달에 왔을 때에는 내가 5월에 모스크바와 북경을 다녀오는 길에 그 쪽의 이야기를 들려 주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동지의 영전에 서게 되다니 이제는 저승에서나 만나 모스크바와 북경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창정 동지!
동지의 영전에 서니 나는 44년전 처음으로 동지와 내가 만나게 되던 일이 되살려집니다.
1946년 봄, 우리 조국의 남북통일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재개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애국적인 지도자인 우사(尤史) 김규식박사와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이 앞에 나서서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여 전민족의 관심이 집중되자 창정동지는 누구 보다도 맨처음 손뼉을 치고 나와 사회민주당을 대표하여 인민당, 공산당, 한민당 등 7개 정당의 젊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중앙정우연락협의회>를 조직하고 좌우합작운동을 열렬히 성원하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 나는 그 당시 김규식 박사를 보좌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지와는 각별히 친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지는 청년 시절부터 사랑하는 조국의 회천의 대업을 위해 청춘도 권세도 공명도 다 버리고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조국을 얽매었던 쇠사슬이 끊기자 뜨거운 정열과 굳센 정력으로 사랑하는 동포들의 행복을 실현하는 일에 자기의 인생의 전부를 바쳐 왔습니다.
동지는 20세기적 사회혁신의 의욕과 민족자주정신에 저촉 받아 4.19혁명 이후에는 국내에서의 진보적 정당의 등장을 촉진하였고, 자주통일운동을 추진하면서 일간지인 민족일보를 창간하여 청년학생들을 통일의 일꾼으로 묶으려고 자기의 정력을 다 쏟았습니다. 한개의 이국에 망명한 망명지사로서는 뛰어난 실천력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지의 그 선구적 애국적 정열과 국내에서 실천하던 우리들은 5.16군사 쿠데타로 인해 혹독한 탄압으로 큰 희생을 치룬 다음 우리들의 운동은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동지의 굳은 의지는 굽힐 줄을 몰랐습니다.
창정 동지!
동지가 생각하는 것은 자나 깨나 통일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조국의 통일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동지의 생활 전부였습니다. 몇 차례 동경에서 동지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화제가 전부 통일문제로 모아져서 평화, 자주, 민주의 원칙, 통일이론의 과학화, 이제 자나 깨나 동지의 그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 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소리도 어디 가서 듣는단 말입니까?
창정 동지!
시간이 흘러가니까 세상도 크게 변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육천만 겨레의 귓전에는 그 무엇인가를 외치듯 속삭이듯 새로운 윤회하는 신호를 울리고 있습니다.이 신호를 듣지도 못하고 가시다니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을 심정입니다. 동지가 사랑하던 조국, 그리고 동포들에게 모든 바친다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동지이기에 조국과 동포들도 동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할 때에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가시다니 저승에서도 안타깝게 생각하리라고 믿습니다. 뛰어난 재간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지를 잃은 우리들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창정 동지는 조국을 시랑하는 마음을 불살랐으며 인생을 완전히 유감 없이 불태웠습니다. 동지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가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동지의 살아온 길에 대해 동지적 입장에서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정 동지!
이제는 다시 동지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슬픔을 참으면서 나는 긴 세월 아껴 주신 깊은 우정에 대해 감사를 드리면서 살아 남은 우리 동지들은 창정 동지의 뜻을 되새기면서 남은 생애를 살아 갈 것입니다. 어느 때인가 저승에서 다시 만납시다.
창정 동지!
나는 한 없는 경애의 정으로 동지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조국의 땅에 흙을 벼개로 편안히 쉬게 될 날이 오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빕니다.
창정 동지!
편안히 쉬십시오.
1990년6월16일 / 도쿄, 蒼丁 李榮根 선생 영결식에서
민족통일촉진회
대표 최고위원
송남헌
http://blog.naver.com/onekorea-news/22303120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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